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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 퀴리(Curie) ☆
작성자 청주중 등록일 11.02.16 조회수 436
* 마리 퀴리(Curie)

  -퀴리 Curie, Marie /1867-1934 
  -프랑스의 물리학자 ·화학자.
  -국적 : 프랑스 
  -활동분야 : 물리학, 화학 
  -출생지 : 폴란드 바르샤바 
  -주요수상 : 노벨물리학상(1903), 노벨화학상(1911) 

 폴란드의 바르샤바 출생. 결혼 전 이름은 Marja Skłodowska이다. 당시 폴란드는 분할 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제정 러시아의 압정(壓政)을 겪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김나지움의 수학 및 물리학 교사였다. 10세 때 어머니를 잃고 17세 무렵부터 가정교사 등을 하면서 독학하였다. 1891년 파리의 소르본대학에 입학, J.H.푸앵카레, G.리프만 등의 강의를 들었으며, 수학 ·물리학을 전공하였다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마리 퀴리는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지구상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우라늄 광에서 새로운 원소를 분리해 내고, 이 원소들을 라듐과 폴로늄이라고 이름 붙였다. 폴로늄은 러시아의 압제에서 신음하고 있던 자신의 조국 폴란드를 위해 붙인 이름이었다.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에서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1895년 여덟 살 많은 유망한 젊은 화학자 피에르와 결혼했다. 목사도 신부도 부르지 않았고 예물 반지도 없는 간단한 결혼식이었으며, 신혼여행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시골 마을을 여행했다고 한다. 
1895년 앙리 베크렐이 우라늄에서 방사능을 발견한 이후 방사능을 연구하기로 결심한 그녀는 남편과 함께 우라늄보다 훨씬 강한 방사성을 내는 물질을 발견하고 이 물질을 폴로늄이라 불렀다. 이 당시 이들의 연구 환경은 매우 열악하여 현재의 과학자들이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는데, 이러한 악조건을 퀴리 부부는 정열과 끈기, 자연에 대한 호기심으로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1903년 베크렐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퀴리 부부는 유명해지면 연구에 방해가 된다 하여 수상식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1906년 남편 피에르가 마차사고로 죽은 후 남편의 뒤를 이어 소르본느 대학의 물리학 교수가 된 마리는 연구를 계속하여 라듐에 대한 공식 표준을 정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191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최초로 두 개의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된 마리 퀴리는 연구 도중 무차별적으로 쐰 방사능 때문에 백혈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만년을 보냈다. 그녀는 1934년 딸과 사위가 인공 방사능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알프스산맥 아래의 한 요양원에서 죽었다.

▣훈화 내용 : 마리 퀴리는 폴란드를 대표하는 과학자이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성취욕을 위해 물론 연구를 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항상 조국 폴란드가 있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기의 연구를 조국의 이름으로 바친 그녀의 숭고한 정신에 고개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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